계곡에서 탁족을 즐기고, 와인 한 잔에 역사를 음미하다
적상산은 가을이 되면 붉은 치마를 연상하게 하는 붉은 단풍으로 유명한 곳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적상산 사고지와 적상산성, 안국사 등 조선시대의 역사유적과 머루와인을 숙성시키는 머루와인동굴이 자리 잡고 있다. 동엽령으로 이어지는 칠연계곡은 일제강점기 때의 의병유적인 칠연의총과 함께 7개의 소를 이루며 떨어지는 칠연폭포의 장관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 코스테마
- 지자체
- 코스일정
- 기타
- 코스총거리
- 49km(칠연계곡 트래킹 3km 포함)
- 코스총소요시간
- 6시간
칠연의총
칠연의총은 한 말에 일본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은 의병장 신명선(申明善)과 그의 부하들이 잠든 곳이다. 시위대 소속 군인이었던 신명선은 순종 융희 원년(1907) 정미칠조약이 체결되어 우리의 군대가 해산 당하자 무주에 들어와 덕유산을 거점으로 의병을 모집, 무주·장수·순창·용담·거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면서 많은 공을 세웠다.
훗날 부근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신명선과 그의 부하들의 유해를 묻고 칠연의총이라 불렀다. 칠연의총은 기울어져 가는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넋이 서린 곳이다.
자세히 보기
칠연계곡
안성면 통안마을 뒤 덕유산 쪽에 반석으로 형성된 계곡과 그 일대를 칠연암동이라 하는데, 무주구천동에 비해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폭포, 소와 담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작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뒤지지 않는다. 이곳의 대표적인 명소는 칠연폭포로 일곱개의 폭포와 못이 연이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폭포는 위에서 아래로 소와 소 사이를 맑은 물이 완만한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린다.\n
자세히 보기
적상산성 호국시비
적상산성 내 안국사 경내 남쪽 축대 아래 있는 호국사비(護國寺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는 적상산성과 관계된 기록을 비교적 상세히 담고 있는 조선시대의 비석이다. 현재는 글씨가 마모되어 거의 알아 볼 수 없고, 1898년(고종 35) 간행된 <적성지(赤城誌)> 고적조(古迹條)에 비문의 전문이 게재되어 있다. \n
자세히 보기
칠연의총
칠연의총은 한 말에 일본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은 의병장 신명선(申明善)과 그의 부하들이 잠든 곳이다. 시위대 소속 군인이었던 신명선은 순종 융희 원년(1907) 정미칠조약이 체결되어 우리의 군대가 해산 당하자 무주에 들어와 덕유산을 거점으로 의병을 모집, 무주·장수·순창·용담·거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면서 많은 공을 세웠다. \n훗날 부근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신명선과 그의 부하들의 유해를 묻고 칠연의총이라 불렀다. 칠연의총은 기울어져 가는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넋이 서린 곳이다. \n
자세히 보기
적상산성 호국시비
적상산성 내 안국사 경내 남쪽 축대 아래 있는 호국사비(護國寺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5호)는 적상산성과 관계된 기록을 비교적 상세히 담고 있는 조선시대의 비석이다. 현재는 글씨가 마모되어 거의 알아 볼 수 없고, 1898년(고종 35) 간행된 <적성지(赤城誌)> 고적조(古迹條)에 비문의 전문이 게재되어 있다.
자세히 보기
안국사
적상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찰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 화상이 지었다고 전한다. 광해군6년(1614)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에 선운각이 설치되어 적상산 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되었다. 이때 사고를 방비하기 위하여 호국사를 지었으며,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안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n가을철 단풍이 절경이며, 산 정상까지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할 수 있다. 인근에는 무주리조트와 라제통문 구천동 계곡이 있다. \n
자세히 보기
- 최초등록일
- 2013-11-30 01:58
- 최종수정일
- 2026-08-20 17:29
-